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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서 시작되는 행복과 불행
  • 201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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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을 보다가 목이 말라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물을 마시고 나서 옆을 보니까 ‘Poison(포이즌: 독약이라는 뜻)’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이 있고, 그 옆에 ‘X(엑스)’ 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경고의 문구를 보자마자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그는 곧 창자가 녹아 죽을 것이라는 공포감에 황급히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사가 진료를 해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 관광객이 착각을 하고서 그렇게 소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본 영어는 ‘Poison(포이즌)’이 아니고 ‘S’자가 하나 더 붙은 프랑스어 ‘Poisson(쁘와송)’이었습니다. 이 단어는 생선(Fish)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였고, 그 옆의 X자는 낚시를 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그를 아프게 했던 것이나 안 아프게 했던 것 모두가 그의 생각에서 나왔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상식이나 믿음은 나의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다스리고 지배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지만 화난다고 짜증을 부리면 몸도 마음도 상합니다. 행복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자살이라는 글자를 반대로 읽으면 살자가 됩니다. ‘스트레스(stressed)’의 반대는 디저트(desserts)’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처럼 나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교차하는 것입니다. 1%의 부정이 99%의 긍정을 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항상 긍정적 바이러스로 살아갑니다. 운명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도 하지 않고 불행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재료만 우리에게 제공할 뿐입니다. 결국 행복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불행을 택할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얘기입니다.

  피카소와 반 고흐는 유럽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입니다. 피카소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희망이 넘쳤으며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림으로 억만장자가 될 것이다. 나는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화가가 되겠다. 나는 갑부로 살다가 죽겠다.” 이처럼 당당하게 말하며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내와 끈기, 그리고 화가로서 성공하겠다는 철저한 계획이 있었고, 실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반면에 반 고흐는 항상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평생 비참하게 살다가 죽게 될 거다. 틀림없어. 나는 돈과 인연이 없는 사람인걸. 불행은 내게서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다.” 환경이 비슷한 피카소와 반 고흐였지만 그들의 생각은 큰 차이를 보였고, 결국 두 사람은 각각 생각하는 대로 되었습니다. 피카소는 살아생전에 억만장자가 되었고, 반 고흐는 동생의 도움으로 겨우 먹고 살면서 가난한 화가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항상 밝은 쪽이 있고, 어두운 쪽이 있습니다. 햇빛이 비치는 쪽은 밝고, 그 반대편은 그림자가 생겨서 어둡습니다. 이때 어느 쪽을 보고 사는 사람이 행복할 것인지는 두말 할 것이 없습니다. 밝은 쪽을 보고 사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날마다 밝은 쪽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그 긍정의 신앙을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29:11)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평안과 행복과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사느냐가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