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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보고서와 부활
  •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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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가이드 포스트지에 특별한 보고서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현재 터키에 이스탄불이라고 하는 수도가 있는데 그 수도의 본래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입니다. 이 콘스탄티노플 옛 도성 안에 성 소피아 사원이 있습니다. 저도 성지순례 차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만, 그곳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사원은 1700년이나 된 큰 성전인데 세 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우뚝 서 있어서 기독교문화의 화려했던 옛날을 우리에게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보고서가 그곳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아주 의미가 있는 성전입니다. 가이드 포스트가 소개하고 있는 그 보고서의 제목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라고 하는 문건입니다. 이 보고서는 빌라도 총독이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에게 보낸 문건으로서 그 보고서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은 나라의 운명까지도 변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각하께 소상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그 다음 내용은 대체로 성경에 있는 기록과 비슷하게 전개되는데 그 뒤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원치 않았지만 폭동이 무서워서 희생양으로 예수라는 청년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비었고, 제자들은 용기를 내서 예수가 부활했다고 전파했습니다. 예수의 생애는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이 모든 것이 그의 손에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이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각하,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각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부활은 추상적으로 설명할 문제가 아닙니다.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문제도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설명할 문제 역시 아닙니다.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머스 아놀드박사는 평생 역사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가 수많은 문헌과 유물들을 고증하고 사실 여부를 조사한 뒤에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푸신 역사 중에서 가장 분명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다. 인류역사 가운데 이것만큼 분명하고 완전한 사실은 보지 못했다. 모든 역사 가운데서 가장 확실한 표적은 바로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사건이다.”

  예수님은 실제로 사망 권세 누르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버렸고, 지금은 무덤의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는 하나같이 창시자의 무덤이 남아있습니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의 무덤은 인도의 능수 해안에 있고, 유교를 창시한 공자의 무덤은 중국의 산동성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의 무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있습니다. 모두가 종교 창시자의 무덤을 자랑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종교가 참 종교인지 분명해집니다.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인류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것 때문에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 누르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과 연합하기만 하면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사람답게 확실한 부활신앙을 갖고 이 땅에서부터 영생의 삶을 시작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