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 말씀/찬양 >
  • 칼럼
잠시 살다 가는 인생인데
  • 2019.05.03
  • 추천 0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이 끝나갈 무렵 중년의 박목월 시인이 그의 제자인 여대생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가정과 명예, 그리고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라는 자리도 버리고 홀연히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 박목월의 아내는 그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을 찾아 나섰습니다. 남편과 젊은 여자가 함께 사는 집을 찾아가보니까 한 눈에도 심히 궁색해 보였습니다. 자그마한 단칸방에 초라한 세간살이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생활고로 어렵게 살고 있는 그들을 마주한 박목월의 어진 아내는 그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고 어렵습니까? 여기 돈과 옷 좀 가지고 왔으니 추운 겨울 따뜻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박목월의 아내는 준비해 간 돈 봉투와 겨울옷을 내밀고서 즉각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박목월과 여인은 그 모습에 감동하고 가슴이 아파서 그들의 사랑을 끝내기로 작정했습니다. 마침내 박목월이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별의 선물로 시 한 편을 지어 주었는데, 그 시가 바로 이렇습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의 이 시에 작곡가 김성태 교수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가 이별의 노래인데,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가곡입니다. 한 때 이 노래를 즐겨 불렀지만 그런 사연이 담긴 노래인지는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아픔과 고통 속에서 진주가 생성되듯 이별의 노래역시 아픔과 고통 속에서 생성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훗날 가정으로 돌아온 박목월을 아내 유익순은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집으로 돌아온 박목월은 전보다 더 충실한 가장이 되었습니다. 실로 유익순 여사는 한 시인과 시와 가정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마음이 한량없이 넓은 여인이었습니다. 몇 십 년 후 그녀의 큰 아들 이동규교수(서울대)가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눈 오는 겨울 밤 몇 시간을 어린 여동생 업고 눈사람이 되어 왜 바깥에 서 있었어요?” 그때 유익순 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가 시를 쓰는데 아이가 울면 글을 못 쓰잖아. 그래도 네 아빠가 시를 발표하기 전에 꼭 날더러 읽어보랬어. 나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었단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바느질 등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착한 아내 유익순, 그녀의 인내와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박목월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한 평생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가지고 가정을 위해, 자녀를 위해 기꺼이 썩어져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 우리 시대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이별의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의 불장난이 얼마나 서로를 아프게 할까를 생각합니다. 또 바람난 남편 찾아 제주도로 가는 길에서 한 여인의 가슴은 얼마나 시리고 아팠을까를 생각합니다. 잠시 살다 가는 인생인데 우리는 너무도 종종 배신하고 상처주고 고통을 주며 살아갑니다. 평생을 후회와 회한 속에서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겨 가는 넓은 길은 결코 좋은 길이 아닙니다. 넓은 문 넓은 길은 그 마지막이 멸망입니다. 오직 좁은 문 좁은 길로 가야만 마지막이 영원한 승리로 끝납니다. 세상이 아무리 화려해도 한 눈 팔지 않고 우리가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이유는 그 마지막에 영원한 생명, 영원한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