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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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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화장실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글귀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깨끗하고 청결하게 사용하라는 것인데, 사람이 머물다 떠난 자리는 어떤 것이든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꽃잎과 꽃가루가 남습니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는 낡은 포들과 전쟁의 상흔이 남습니다. 하얀 눈이 내린 길을 걸어가면 사람의 발자국이 남습니다. 어디서나 사람이 머물다 간 곳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한 번 이 세상에 오면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그렇거니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의 흔적은 남아있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악하고 추한 행실의 흔적을 남기고,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고 고귀한 흔적을 남깁니다. 구한말의 매국노 이완용은 지금까지 비참하고 더러운 이름으로 남아 있지만, 조국을 위해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불살랐던 안중근 의사는 아직까지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시인은 시로 말하고, 음악가는 오선지로 말하며,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듯 사람은 삶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터인데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하겠습니까?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6:17) 이 말은 이제부터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내 몸에는 예수님 때문에 생긴 거룩한 상처와 흔적이 있습니다.”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만일 사도 바울의 벗은 몸을 세밀히 관찰하여 본다면 그 몸에 남들이 갖지 않은 특이한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그의 발목에는 빌립보 감옥에서 차꼬에 채였을 때 생긴 흔적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그 어깨 언저리에는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을 뻔했을 때 입은 흉터를 볼 수 있고, 허리에는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았을 때 생긴 채찍의 깊은 상처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기억이 되살아나겠지만, 바울은 그것을 자랑스러운 예수의 흔적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바울이 하늘나라로 돌아간 뒤에도 그가 남긴 흔적은 세상 어디에 가도 남아있습니다. 그의 희생과 헌신, 복음 전파의 열정은 한국교회의 부흥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면 바울이 남긴 흔적은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는 흔적인 것입니다.

  오늘도 어떤 사람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많은 봉사와 섬김, 사랑의 흔적을 남긴 채 아쉽게 떠나가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죽었으나 믿음으로 말하는 자들로서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어디서나 믿음으로 살다간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감수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간의 희생입니다. 물질의 희생입니다. 봉사의 희생입니다. 섬김의 희생입니다. 나눔의 희생입니다. 사랑의 희생입니다. 헌신의 희생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 어떤 열매도 거둘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많은 열매를 거둡니다. 평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서 바울처럼 아름답고 귀한 흔적을 남기려고 애쓰는 사람만이 사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