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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버지
  •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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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목사님이 예비 며느리를 만나 대화를 해보니까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너무 가엾고 불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부터 너의 아버지가 되어줄 테니까 나를 아빠라고 한 번 불러봐라.” 그랬더니 그 예비 며느리가 한참을 흐느끼더니 겨우 아빠하고 한 번 부르고서 대성통곡했습니다. 그 바람에 목사님도 울고, 사모님도 울고, 아들도 울면서 눈물바다를 이루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며느리가 여전히 아버님하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딸과 며느리의 차이점입니다. 딸이나 아들은 시집을 가나 장가를 가나 언제든지 아빠하고 다가와서 하고 싶은 얘기 다합니다. “아빠, 이것 가져가도 돼요? 아빠, 손녀 좀 보고 계세요.”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그렇지만 사위나 며느리는 조금 다릅니다. 항상 격식을 갖추어서 아버님하고 부릅니다.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부터 다르고, 말이나 행동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주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이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거기에 사닥다리가 놓여 있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사닥다리를 흔히 야곱의 사닥다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사닥다리를 세운 사람은 야곱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닥다리를 세운 것입니다. 꿈에 나오는 사닥다리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시고 만나주시려고 친히 세워놓으신 사랑의 사닥다리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닥다리는 야곱의 사닥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닥다리라고 해야 맞습니다. 야곱이 진퇴양난에 빠져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때 그 수렁에서 건지시려고 세워놓은 사닥다리가 바로 하나님의 사닥다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닥다리를 기도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내가 기도하려고 하나님 앞에 마주 앉을 때 나는 사닥다리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닥다리를 통해서 나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려지고, 하나님의 은총과 복이 사닥다리를 통해서 나에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은혜를 아시기 때문에 오늘도 주기도문을 통해 하나님을 이렇게 부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주기도문에는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없습니다. 오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만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라는 호칭이 가장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라든지, 여호와라든지, 전능하신 자라든지, 여러 호칭이 있지만 가장 가깝게 느껴지고 가장 정겨운 호칭으로 느껴지는 말은 단연코 아버지입니다. 그분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쓸쓸한 광야에 혼자 있는 줄 알았지만 하늘 문이 열리면서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한 대로 응답받고 믿음의 족장이 되어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써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 있을 때만 지켜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장사하는 자리에도 하늘 문이 열려 있고, 땀 흘리며 기계를 만지는 자리에도 하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가며 어렵게 공부하는 자리에도 하늘 문은 열려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리에도 하늘 문은 열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 아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기도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