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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의 위험을 아는가?
  • 201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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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병이 심각한 한 여자가 음식을 해놓고 아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자는 스스로도 대견하게 생각되었는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엄마는 얼굴도 예쁜데 요리도 잘해. 그렇지? 이런 걸 사자성어로 하면 뭐라고 말하지?” 엄마가 기대한 대답은 금상첨화였습니다. 그런데 눈치 없는 아들이 얼른 이렇게 말했습니다. “, 자화자찬?” “아니, 그거 말고 다른 거 있잖아!” “, 과대망상?” 그 말을 들은 엄마가 거의 폭발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성질을 꾹 참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자로 시작하는 건데.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 ‘금상첨화가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었는데, 그때도 아들은 눈치 없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금시초문?”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지만 오해는 자해라는 말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바로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스스로 속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 지도 모릅니다. 존재의 의미를 모릅니다. 인간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피해를 줍니다. 마지막에는 허무로 끝나고, 비극으로 끝납니다. 이렇게 오해는 자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인생이 아무리 바빠도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어디서 왔는지, 내 운명의 시점이 어디까지 왔는지,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이 실패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빅터 프랭클박사가 쓴 ‘The Will to Meaning(의미에의 의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공허감과 무의미에 시달리는 인간의 상태존재적 진공상태라고 말합니다. ‘존재적 진공상태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말이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겉 사람은 멀쩡한 것 같은데 속은 텅 비어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겉모양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사실은 진공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아무런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이런 상태에 빠집니까? 왜 영혼 없는 사람처럼 살아갑니까? 무언가 착각에 빠져서 그렇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릅니다. 동물은 배만 부르면 됩니다. 동물적 욕구만 충족되면 그것으로 행복해하고 만족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배고픈 것을 충족시키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충족시키고, 내가 되고 싶은 것을 충족시킨다고 해서 나의 내적 존재가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존재의 의미를 찾고, 삶의 목적을 찾는 일은 오직 나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 영혼이 존재적 진공상태에 빠지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내 심령이 빈 집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귀신 들린 사람이 주님의 은혜로 자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영혼의 집을 그대로 방치하니까 나중에 쫓겨나간 그 귀신이 일곱 귀신을 더 데리고 들어옵니다. 그로 인해 그 사람의 나중이 처음보다 심히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비워 놓고 인생의 주인 되시는 주님을 모시지 않으면 그 심령 속에 온갖 귀신이 다 들어오고 우리의 심령은 완전히 황폐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은 악한 세대는 이와 같이 되리라.” 신학자 벵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중립지대는 없다.” 믿는 자에게 중립은 없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확실히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