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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도와 말씀의 날개를 준비하라
  • 201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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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말 인도양의 한 섬에는 도도라는 새가 살았습니다. 그 섬에는 도도새들이 살아가기에 아주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협하는 천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방에는 먹을 것이 널려 있었고, 삶의 안락함을 위협하는 것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도도새들은 그 땅에 둥지를 틀고, 땅에 널려 있는 풍성한 먹이들을 먹으며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굳이 날개를 이용하여 창공을 날아오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도도새의 키는 고니처럼 크게 성장했고, 몸무게도 자꾸 늘어났습니다. 평균 몸무게가 25kg나 되고, 부리의 길이는 23cm나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날갯짓을 해도 하늘을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하지 않던 날개는 어느새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고, 날개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 새가 사냥꾼들의 표적이 된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도새는 스스로 안락함에 빠져서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 결과 사람들에게 잡혀먹는 식용 새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도도새처럼 살아갑니다. 외적으로 보아서는 성도가 분명한데 말씀과 기도의 날개가 퇴화되어서 능력 있게 살지 못하고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번번이 패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도도새 성도가 틀림없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고, 예수의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예수 이름으로 승리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도도새 성도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편안하다고 기도를 쉬면 안 됩니다. 일이 많고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을 멀리하면 안 됩니다. 성도는 기도의 날개와 말씀의 날개로 믿음의 세계를 비상하는 것인데, 두 날개가 꺾이면 어떻게 날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조금 어려워도 날기를 원하십니다. 조금 불편해도 날기를 원하십니다. 조금 힘들어도 날기를 원하십니다. 발은 차꼬에 묶여 있어도 마음은 하늘을 날기를 원하십니다. 조금 피곤해도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조금 바빠도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과 쾌락에 더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께 주목하지 못하면 마귀만 좋아합니다. 사냥꾼들이 피둥피둥 살 찐 도도새를 쉽게 잡아가는 것처럼 마귀는 세상에 안주하여 사는 성도들을 쉽게 농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날기를 연습하며 훈련했던 새들은 사냥꾼이 쫓아와도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눌러 앉아서 먹기만 하고, 게으름과 타성에 젖어 살았던 새들은 그냥 대책 없이 잡아먹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영적 훈련을 쌓고 항상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사는 성도는 범사에 승리하지만, 이 땅의 삶에 안주하고 세상의 것만 좇아가는 성도는 범사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때로 천적과 같은 고난이 찾아와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이 겉으로 보기에는 형벌 같고, 하나님의 실수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바라보게 하고, 믿음으로 비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주님만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고난은 천국을 사모하게 만듭니다. 고난은 이 편한 세상보다 저 편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고난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고난은 우리를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우리를 믿음의 사람, 능력의 사람, 그리스도의 군사로 세워놓는 것은 바로 고난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적과 같은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선물입니다. 천적이 있어서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새처럼 고난이 있어서 우리가 믿음으로 하늘을 비상할 수 있다면 고난이야말로 주님의 큰 선물인 것입니다. 지금의 고난을 품고 기도와 말씀의 두 날개로 비상하는 성도는 이미 놀라운 복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