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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보다 예언하기를 힘쓰라
  •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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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가 설교를 하니까 그 설교가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 자기 나라의 말로 들렸습니다. 이것은 대화가 되는 방언이요 이해가 되는 방언으로서 대인(對人) 방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대신(對神) 방언이 있습니다. 이 방언은 성령님께서 대신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인데, 이런 기도는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고, 불신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유익이 있지만 알아듣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방언이 바로 이런 방언이었습니다. 서로 방언을 많이 했지만 그 방언이 대신 방언이라서 아무리 방언을 해도 피차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방언하는 사람은 내가 방언한다.” 하면서 방언 못하는 사람을 업신여기며 더 큰 소리로 방언을 했고, 어떤 사람은 방언으로 찬송까지 불렀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방언하는 사람은 방언을 한다고 해서 교만해지고, 방언을 못하는 사람은 못해서 위축되고 열등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방언 때문에 교회가 오히려 갈등을 겪고,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그때 바울이 그 소식을 듣고 방언보다는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강조했습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14:1)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대체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나에게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예언은 교회에 덕을 세웁니다. 흔히 예언의 은사를 말하면 대부분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점쟁이처럼 알아맞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특히 목회자는 반드시 이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다 해도 교인들이 그 설교를 잘 알아듣지 못하면 큰 낭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방언보다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했다 해서 방언의 은사는 필요 없다.’라고 단정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방언은 하늘의 언어입니다. 이 방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방언의 은사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방언의 은사를 받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못 받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거목이었던 한경직 목사님도 이 방언을 못 받았고, 또 곽선희 목사님도 못 받았습니다. 김동문 목사 역시 방언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지만 아직까지 방언의 은사를 못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 3남매는 다 방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는 꼭 그 사람에게 맞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못 받았다고 실망할 것 없습니다. 주시면 감사하고, 안 주셔도 다른 것 받았으니 감사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개도 방언을 받는데 왜 사람이 못 받느냐?”라고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그리고는 코카콜라를 천 번만 해라. 그러면 방언이 터진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방언은 하나의 은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나 성령에 연관시켜서 억지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방언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보다 말씀을 잘 풀어서 가르치고 전하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더 귀하다고 말씀합니다. 방언은 내 영이 하나님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개인적으로만 유익하지만,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풀어서 가르치고 여러 사람에게 신앙의 권면을 하고 위로를 해서 교회 전체의 덕을 세우기 때문에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예언의 은사가 충만하여서 가르치는 자도 능력 있게 가르치고, 말씀을 받는 자도 은혜가 넘쳐서 항상 순종의 열매가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