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 말씀/찬양 >
  • 칼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 2019.11.15
  • 추천 0

  옛날 동독과 서독이 분리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동독에서 살던 개 한 마리가 서독으로 넘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 개에게 물어봤답니다. “, 너는 왜 넘어왔냐? 주인이 밥을 안 주더냐? 아니면 두들겨 패더냐?” “둘 다 아닙니다.” “그럼 왜 넘어왔냐?” “. 마음대로 짖고 싶어서 넘어왔습니다.” 하나의 유머지만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우쳐주는 얘기입니다.

  이 세상에 자유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소중하고 귀하지만 자유에 대한 바른 인식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면 오히려 노예보다 더 불쌍한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자유에는 역설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에게는 절대적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공간적, 제한적, 능력적 제한이 있기 때문에 절대적 자유는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자유는 선택적 자유입니다.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 누구든지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의 선택에는 책임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서 김동문이라는 사람이 박현옥 씨와 결혼을 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김동문의 자유의지로 박현옥 씨를 선택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그렇게 선택한 후에는 그 결단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 취직하거나, 국가공무원이 되거나, 일단 그 무엇인가를 선택한 후에는 그 결단에 책임을 져야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책임적 자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궁극적인 자유는 구속적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살아갑니다. 체제든, 권력자든, 국가든, 어떤 신이든, 누군가에게 구속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남습니다. 내게 주어진 선택적 자유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주인으로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가 나 스스로의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실 것인가? 세상을 주인으로 모실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주인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에 따라 결과도 확연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유인이냐? 노예냐?’ 하는 것이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얘기입니다. 새는 공중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물속에서는 자유가 없습니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죽습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물 밖으로 나가면 죽고 맙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품안에서만 자유롭고,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만 자유롭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밖에서는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자유의지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내가 기꺼이 하나님이 종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나는 참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