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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를 극복하라
  •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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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중견 기업의 부장이 20년 동안 근속한 보답으로 두 달의 유급 휴가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장은 회사의 보너스를 거절하였습니다. 사장이 불러서 물었습니다. “왜 휴가를 안 가겠다는 건가?” 부장이 대답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서 회사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어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다른 이유가 또 있나?” “두 번째 이유는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데도 회사가 운영이 제대로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어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누구나 염려하고 걱정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은 염려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늘도 염려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일이 안 되면 안 되어서 걱정이고, 일이 잘 되면 너무 잘 되어서 걱정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매여 평생 염려하며 살아가는가 하면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생각해보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지나간 과거는 염려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미래의 문제도 나에게는 일어날지 어떨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가 염려하는 것의 45%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문제이고, 45%는 앞으로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염려의 90%는 쓸데없는 것이고, 10%만이 현실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가운데는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잠 못 이루거나 오지도 않을 미래의 일에 대해 염려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과거는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한 번 지나가면 결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붙잡고 염려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염려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과거를 염려하는 것은 마치 톱밥에다 톱질하는 것과 같다.” 톱질은 생나무든, 마른 나무든 나무에다가 해야지 톱밥에다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흘러간 과거에 매달리는 것은 마치 톱밥에다가 톱질하는 것과 같이 부질없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도 똑같습니다. 사실 미래는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역이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런데도 미래의 일을 끌어당겨 염려한다면 이것 또한 어리석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내일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면 미래에 대한 염려처럼 부질없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6:34)

  사실 염려와 걱정은 우리가 눈만 뜨면 덤벼듭니다. 그러므로 염려를 극복하는 비결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염려의 주머니와 믿음의 주머니가 있습니다. 그런데 염려의 주머니를 키우면 믿음의 주머니가 쭈그러들고, 반대로 믿음의 주머니를 키우면 염려의 주머니는 쭈그러들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 반비례하는 것입니다. 이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 질투 때문에 죽임을 당하려다가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또 다시 누명을 쓰고 애굽의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눈물의 행진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염려 대신에 끝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후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요셉은 나중에 자기의 형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