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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일꾼
  • 202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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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실수로 죄를 짓고 교도소를 다녀온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김 목사님, 다른 데는 다 가도 교도소는 가지 마시오.” 그 말을 듣고 이 양반아, 그런 말을 할 사람이 따로 있지 지금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요?” 하고 따지려다가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교도소에 갔다 온 사람들에 의하면 정말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그 첫째가 자유를 잃어버리는 고통이 그것입니다. 교도소에 갇히면 가고 싶은 곳에 갈 수가 없습니다. 보고 깊은 것도 마음대로 볼 수 없고, 하고 싶은 일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꼼짝없이 갇혀서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지내야 합니다. 자유를 빼앗기고 구속당하는 고통, 이것이 교도소 생활의 첫 번째 고통입니다. 두 번째는 춥고, 덥고, 배고픈 것입니다. 교도소는 추운 겨울에도 난방 장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솜으로 누빈 옷을 사 입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더운 여름에도 선풍기 하나 없이 지내야 합니다. 항상 더위와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곳이 교도소입니다. 거기에다가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지 못해서 배고픔에 시달려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큰 고통입니다. 세 번째는 모욕당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교도소에서는 나의 명예나 인격, 업적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방장에게 신고를 하고, 인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모욕과 수치를 당해야만 합니다. 이것 또한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고통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가로움의 고통입니다. 한가로움, 다시 말해서 할 일 없이 노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아이고, 일 하기 싫어 죽겠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놀면 얼마나 좋아?’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살이에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 이것보다 큰 괴로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도소에서는 일을 시키는 것이 일종의 상이요 혜택입니다. 처음에는 일을 시키지 않다가 수형생활을 잘하면 그때 일을 시킵니다. 반면에 말을 듣지 않고 법규를 위반하면 독방에 가두어버립니다. 일명 징벌방인 독방에 가두어놓고 아무 일도 시키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최고로 한가롭게 만듭니다. 이 한가로움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합니다. 할 일이 없다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없습니다. 사람은 일할 때 복을 받습니다. 또 일하는 사람이 건강합니다. 슈바이처나 피카소는 둘 다 20세기 최고 위인들입니다. 아흔이 넘도록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을 즐긴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치료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피카소는 그림 그리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 사람들은 따로 휴식을 즐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 자체를 즐겼습니다. 그렇게 일을 즐기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할 일이 있다고 해서 다 건강하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일하는 태도가 바르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일 때문에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 자체가 즐겁고 행복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 전체를 걸 만큼 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일했습니다.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하는 소명의식이 분명했기에 행복하게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소명자에게는 감사가 있습니다. 소명자에게는 긍지가 있습니다. 소명자는 행복하게 일합니다. 오늘도 나를 택정하여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세워주신 분이 주님이신 것을 확실히 믿고 일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