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 말씀/찬양 >
  • 칼럼
사명자의 길
  • 2021.01.08
  • 추천 0

  대만에서 정신병자를 잘 치료하는 유명한 병원에 한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증상 때문에 오셨습니까?” “저는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요?” “제가 꼭 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까?” “송아지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에 대한 유머나 속담도 많고, 이야기나 시도 많지만 라고 말하면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소는 언제 보아도 믿음직스럽습니다. 가볍게 뛰어다니지 않습니다. 항상 성실하게 열심히 일합니다. 소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반항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소는 대단한 고기나 보약을 먹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풀이나 뜯어 먹고, 멀건 콩깍지 여물 정도 먹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새벽부터 밭을 갈고 짐을 나릅니다. 소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해지면 시장에 팔려갑니다. 그래서 주인집 자녀의 등록금도 내게 하고, 교회에다 건축헌금도 바치게 하면서 귀한 일에 큰 도움을 주고 일생을 마칩니다. 그런데 소는 살아서만 충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다음에도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떠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소는 죽어도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뼈는 푹 고면 사골이 됩니다. 우족을 끓이면 우족탕이 되고, 소꼬리를 끓이면 소꼬리 곰탕이 되고, 갈비를 끓이면 갈비탕이 됩니다. 고기도 얼마나 다양한지 부위에 따라 그 이름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꽃등심을 비롯해서 안심, 목심, 아롱사태, 홍두깨살, 안창살, 제비추리, 채끝, 치맛살, 차돌박이가 그것이고, 우설(소 혀)이나, 우수(소 골), 소 간, 천엽, 곱창, 막창 등등 이런저런 부속물까지 도대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소뿔로는 공예품의 일종인 화각함을 만들고, 소가죽으로는 소파나 가방, 지갑, 구두를 만듭니다. 소는 마치 인간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살아서는 주인에게 죽도록 충성하다가 죽은 다음에도 모든 것을 내어주고 돌아갑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충성된 일꾼을 소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본래 충성(忠誠)’이라는 말의 ()’가운데 중()’마음 심()’이 합쳐진 말로서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 언()’이룰 성()’이 합쳐진 것으로서 말대로 사는 신실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평생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신실하게 일하는 것이 충성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헬라어로는 피스토스(pistos)이고, 영어로는 페이스풀(faithful)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신실한, 성실한, 충실한, 믿을만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신실하고, 성실하고, 충실하고, 믿을만한 일꾼으로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체 세상에 한눈팔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충성된 일꾼이라는 얘기입니다. 성경을 보면 두 마리의 암소가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두 마리의 암소는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송아지를 남겨두고 길을 떠나는데, 어미 소를 찾는 송아지의 애절한 울음소리는 암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암소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울면서 벧세메스로 갔습니다. 두 마리의 암소는 법궤를 메고 가기 위해 눈에 밟히는 송아지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때로 포기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희생이 없는 충성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 바로 사명자의 길이요, 충성의 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