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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희망을 노래하라
  • 20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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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들이 물통에 여러 마리의 쥐를 넣은 후 뚜껑을 닫고 빛을 차단했습니다. 통속의 쥐들은 평균 3분 만에 헤엄치기를 포기하고 죽어버렸습니다. 다음 실험에서는 그 통속에 희미한 빛이 비치게 했습니다. 그러자 쥐들은 평균 36시간 이상을 헤엄치며 살아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 갇힌 쥐는 모든 노력을 포기했지만 한 줄기 빛에 희망을 품은 쥐는 무려 750배의 시간을 견뎌냈던 것입니다.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확인시켜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한 생을 살면서 실망스런 일을 겪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누구라서 실망스런 일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실망과 절망은 틈만 나면 찾아옵니다. 마치 친구처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절망이 수시로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 절망을 극복하면 승리자가 되고, 절망에 굴복하면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절망의 포로가 되면 그냥 주저앉기 쉽습니다. 절망이 심해지면 더 이상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합니다. 더 이상 꿈을 갖지 못합니다.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믿는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라 해도 때로 절망에 빠져 형편없는 모습으로 허우적거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이 왜 절망에 빠집니까? 먼저 출발점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감격스러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면 절대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이미 인생 최대, 최고의 복을 받은 자라고 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끝까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도착 지점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착 지점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앙이 분명한 사람은 잠깐 당하는 현실의 고난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을 생각하며 현재의 고난을 잘 이겨내고, 눈물을 찬송으로 바꿉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잊어버리니까 절망하고 낙심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절망하는 이유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바다 끝에 가서 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절대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우리의 출발점과 도착점을 잊어버리고 절망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잊어버리고 절망합니다. 이 절망이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패배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친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29:11) 희망은 성공의 히든카드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끝까지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시인 정연복 씨의 희망의 노래라는 시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깜깜한 밤하늘에도 빛나는 별 하나는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맥없이 주저앉아 절망의 늪에 빠지지 말자./ 슬픔과 고통의 날에도 시간은 쉴 새 없이 흐르고/ 아침에 물러서지 않는 영원한 밤은 없으니.” 절망할 시간에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자가 결국 승리의 산 정상에 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