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 말씀/찬양 >
  • 칼럼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 2021.07.30
  • 추천 0

  어떤 사람이 수술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취제를 놓고는 의사가 무언가로 쿡 찔렀습니다. 그때 아직 마취가 완전히 되지 않아서 의식이 있던 그 사람이 아야!’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하는 말이 ? 아직 안 죽었네.” 하더랍니다. 어디서나 죽은 사람은 감각이 없습니다. 말이 없습니다. 감정대로 살지 못합니다. 욕심 따라 살지 못합니다. 살아있으니까 감각을 느끼고, 욕심 따라 살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오직 주님께서 내 안에 사시도록 나를 내어주면 나는 감정 따라 살지 않습니다. 세상 욕심 따라 살지 않습니다. 죄의 종노릇하며 살지 않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고 나의 자아가 살아있으면 나는 여전히 나의 정욕을 따라 살고 죄의 종노릇하며 살기 마련입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시도록 삶의 주권을 내어주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쉽게 이런 말을 합니다. “마음을 비워야 행복해진다. 마음을 비워라.” 실제로 불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이 마음을 비우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한자로는 빌 공()’자를 쓰고, 영어로는 ‘empty’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지금도 마음을 비우자고 빌 공()’자를 3개씩이나 써놓고 기도합니다. ‘(), (), ()’ 그러나 마음을 완전히 비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비우자. 비우자. 비우자.” 하고 노래를 해도 안 됩니다. 밥 먹는 것을 잊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결심을 해도 배가 고파오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습니까? 말은 되는데 실천이 안 됩니다. 도대체 실효성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유욕, 탐구욕, 명예욕, 성취욕, 자존심, 이런 것들을 다 내려놓고 지워버리자.” 하고 아무리 외쳐도 깨끗이 지워버리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자존심만 해도 그렇습니다. 다 비운다고 해도 마지막에 자존심이 걸려서 내려가지 못합니다. 그 놈의 자존심 때문에 화가 나고, 자존심 때문에 고민이 되고, 자존심 때문에 잠도 안 오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망했다고 소문나는 게 문제입니다. 내가 병든 게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개가 병들어 죽을 지경이래.”라는 소문이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병원에 입원해도 위문 오는 것을 끝까지 거절합니다. 내가 아파서 죽는 건 좋지만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내 마음을 비우는 것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버리는 것도 나로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느니라.” 내가 나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죽는 것은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죽어 마땅한 나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내가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랑에 감동하기만 하면 그 순간 나 자신이 사라져버립니다. 나 자신의 욕망이나 교만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립니다. 내가 십자가 앞에서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쳐다보는 순간 나는 죽고 오직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사시는 은혜가 시작됩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신앙이란 뭐냐?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세상 욕망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옛사람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옛사람의 나는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고, 오직 주님이 내 안에서 살도록 모든 주권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